가톨릭 · 기도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석란 2008. 8. 17. 17:30

 

        

          2008년 8월17일 연중 제 20주일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전봇대 하느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무척 가난하였습니다. 정말 하루에 한 끼 식사도 하기 힘든 가난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가난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가 보리 고개였습니다. 보리가 익기 전에 양식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파랗게 덜 익은 보리는 잡아서 큰 가마솥에 넣고 볶듯 찌면 보리가 파랗게 익는 것을 먹는 것입니다. 그나마 먹을 보리가 있는 집은 농사를 짓는 집이고, 농사를 짓지 못하는 우리 집은 정말 가난의 연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읍내까지는 약 9km를 걸어가야 하는 시골이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16살이 되던 어떤 날 술에 취하신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들어오시며 배가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별로 잡수신 것도 없이 빈속에 그 독한 30도짜리 소주를 드셨으니 인사불성이 되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밤을 새우시며 하혈(下血)을 하셨습니다. 가마 솥 밑에 무은 숯검정이 좋다는 말을 들어서 물에 개어 드렸지만 하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택시도 없던 때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 네 시경 이불호청을 뜯어 것을 만들고 중학교 일학년 다니던 동생과 이 십리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비지땀이 흐르고 어린 동생이 쉬자고 보채는데도 그냥 달려가면서 정신없이 이런 기도를 바쳤던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 엄마, 난 아직 여덟 동생들을 돌보며 이 집안을 이끌어 갈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좀 살려 주십시오.”울면서 가는 길에 핏기가 하나도 없어 백지장처럼 되신 수족을 무의식적으로 긁고 계신 아버지가 너무 가벼웠습니다.


  동이 틀 무렵 읍내 병원에 도착하였더니 의사선생님이 눈을 비비며 ‘아버지는 장출혈로 얼마 못 버틸 것이고, 다행스럽게도 수혈할 만한 피가 도착하면 수혈해가면서 지혈해서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돌아가시더라도 병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에 각서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각서를 쓰고, 병원을 나와 친구들이 부지런히 학교에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병원 문 밖의 전봇대를 끌어안았습니다. 시커멓게 콜탈을 칠한 전봇대는 만지기만 해도 내 옷은 까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까만 콜탈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 전봇대가 하느님이었습니다. 내가 꼭 끌어안고 목 놓아 울 수 있도록 그냥 서 계시는 묵묵부답의 하느님이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도 상관하지 않고,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어린 나에게는 체면이고, 부끄러움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냥 묵묵히 서 계시는 하느님만 있을 뿐이고, 그 전봇대 하느님에게 의지해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고 있는 어린 자식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그 병원이 생기고 나 후 처음으로 O형 피 6000cc를 조달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네 하느님께서 너의 아버지를 살려 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지방 여인의 용기와 끈기와 지극한 모성애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자식이 마귀에 들려 사경을 헤매고 있고,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으며, 만나기조차 꺼리는 사람들 속에서 사고무친(四顧無親)의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 이제 극단적인 상황에 다다르고 마지막 희망을 놓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심정의 엄마입니다. 정말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고, 나이어린 딸이 마귀에 들려 온갖 미친 짓을 다하는데 의사도 소용없고, 돈도 소용없고, 친인척도 소용없고, 돌봐주는 이웃도 없으니 이제 마지막 희망으로 예수님에게 왔는데 무슨 예의염치(禮義廉恥)가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되어 낯이 두껍게 철판을 깔고 예의염치를 버렸다고 한들 무엇이 대수이겠습니까? 예수님의 퉁맹스러운 답변에도 지혜롭고 재치 있게 받아넘기고, 제자들이 내 쫓아버리라고 하는 멸시와 천대에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를 쓰고 덤벼드는 그 용기와 끈기는 바로 엄마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신비로운 선물로 태중에 키우고 배 아파 낳고, 젖을 주어 키웠고, 자신의 몸보다 더 소중한 보물처럼 죽음을 불사하고 돌보아야 하는 딸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유도의 최민호 선수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10년이 넘도록 매일 미사를 참례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 황금동 본당에서 황금메달을 바치면서 올림픽이 끝나 돌아오면 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끈기와 열정과 사랑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간절함과 정성이 점점 줄어듭니다. 어려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그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의술이 발달하고,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이제 예의염치를 차리는데 더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도 체면을 차리고 있습니다. 너무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문제이지만 교만해져서 체면 차리고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 기도는 변질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죽고 살고를 떠나서 기복적인 곳에 모두 모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후안무치의 저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 주셨으니 형식과 절차를 떠나서 분별없이 드리는 저의 기도를 물리치지 마소서.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제가 지금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의 목숨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제 영혼은 영원히 죽을 것이므로 주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임금과 의(義)를 위해 죽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배반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는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위대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제가 어찌 형벌을 두려워하여 이를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최해성 요한(‘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서


                                 - 야고보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