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전 라섹수술을 받은 이모(28· 여)씨. 안경과 렌즈를 벗어 좋기만 했던 그에게 작년 가을 문제가 생겼다.
- 햇빛을 쬐면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았고, 맑은 날도 안개 낀 것처럼 시야가 희미할 때가 점점 늘었다.
- 라섹수술을 받은 안과에 문의해도 "별 이상이 없다"고만 했다.
대학병원 안과를 찾았더니 '라섹수술을 받으면 안 되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환자'라는 진단이 나왔다.
-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60~70대에 증상이 나타나며 그 중 일부는 시력을 잃는다.
- 그런데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이 라식·라섹수술을 받으면 증상이나 시력 상실의 위험이 훨씬 빨리 나타날 수 있다.
라섹수술을 받은 안과에 가서 따졌지만 의사는 당시 차트를 보여주며 "수술 당시에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소견이
- 보이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이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 ▲ 눈동자 각막에 흰색 물질이낀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사진(왼쪽)과 정상 각막(오른쪽). /그래픽=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눈의 검은 동자 쪽 각막에 '하이알린'이라는 흰색 물질이 끼는 질환으로 1320명 당 1명꼴로
-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국내에는 4만 여 명이 이 병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라식이나 라섹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 이들이 라식이나 라섹과 같은 시력 교정술을 하면 실명(失明)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응권 교수는 최근 안과학저널인 '시력교정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환자는
- 라식·라섹수술 후 증상이 악화되므로 수술 전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병의 진단이 무척 어렵다는 점. 20~30대에는 눈을 자세히 관찰해도 확인이 어렵다.
- 나이가 들어도 특별한 증상이 없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 안과 의사가 미세현미경으로 환자 눈을
- 들여다 봐도 흰 점이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자외선 등 외부 자극이 질환을 악화시킨다고 추정할 뿐이다.
라식이나 라섹 등을 할 때 각막을 절제하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급속히 악화된다.
- 시력 교정술을 할 때 각막 사이를 절제하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을 일으킨 특정 유전자가 자극을 받아
- 옆으로 분화하거나 더 부풀어 오른다고 한다.
- 하지만 백내장 수술처럼 각막 외부를 건드리는 수술에서는 아벨리노 유전자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안과 학계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는 사람 중에서 시력교정술인 엑시머 레이저, 라식수술, 라섹수술 등을
- 받은 사람이 3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세브란스병원 안과를 찾은 사례만 해도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으면서
- 라식수술을 받은 사람 150여 명, 라섹수술을 받은 사람 15명에 이르고 있다.
김응권 교수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으면서 라식·라섹수술을 받은 사람이 학계의 추산보다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으로 인한 각막 혼탁은 아직은 완치가 어렵다.
-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이 병으로 진단되면 질환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면서 자외선 등의 외부 자극을 피하는 것이
- 최선이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때문에 시력이 많이 떨어진 환자는 각막 이식을 하거나 레이저로 혼탁을 제거하기도 한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유전성이 강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 한 쌍의 유전자 중 한 쪽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이형 접합자'라고 부르는데, 12세부터 각막에
- 흰 점이 생기기 시작, 나이를 먹으면서 흰 반점의 수가 늘고 크기도 점점 커져 60대 이후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 한 쌍의 유전자 중 양쪽 모두가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유전자를 보유한 '동형 접합자'는 3세부터 증상이 나타나
- 6세에 실명할 정도로 병이 빨리 진행된다.
삼성서울병원 안과 정의상 교수는 "이 병은 100% 유전 질환이므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각막이상증 진단을 받으면
- 그 자녀도 가능성이 크므로 시력교정 수술을 받기 전 정밀검사를 통해 이 병이 있는 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안과에서 1차로 미세 현미경으로 검사한다. 하지만 먼지와 헷갈릴 정도로 미세한 점이어서
- 검사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최근에는 모발의 모근(毛根)이나 입 속 상피세포를 긁어 DNA를 검사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개원안과에서는 "라식이나 라섹 전에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검사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라는 입장. 서울 강남의 한 안과 원장은 "라식이나 라섹의 비용이 150만~300만원 안팎인데,
- 별도 비용을 들여 DNA검사를 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병원이 바가지 씌우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 더욱이 현미경만으로는 이 병을 확실하게 발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suju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