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 기도

야고보아저씨의 묵상 --사랑하며 용서하시오

석란 2009. 2. 22. 23:04

2월 22일 야고보 아저씨의 묵상 - 사랑하며 용서하시오.

  

        

            2009년 2월 22일 연중 제7주일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사랑하며 용서하시오.

 

    오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을 생각하면서 혼자 왈칵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랑하며 용서하시오.”

    예수님께서 언제나 말씀하셨고, 성경에서 언제나 대하는 글이었고, 동서고금을 통해서 언제나 들은 말이면서도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제 설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을 반성하면서 언제나 ‘내 탓’이라고 가슴을 두드리면서도 결심이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아서 그랬나 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가장 긴 여행이었고 다시 가슴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것이 또한 먼 길이었다.’고 자신이 사랑을 실천하는 어려움을 말했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내 삶에서 사랑하며 살아 온 시간보다 미워하며 산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 미움은 제일 먼저 어머니를 시집살이 시키시는 할머니에게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무능력한 모습으로 비쳐진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후에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한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가슴에 가득히 멍이 들게 한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면서 떠올리면서 한(恨)을 삭일 수는 없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한 것은 어린 나에게 10남매를 남겨 두시고 가난과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힘든 삶이었고, 병으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고 하여도 의지할 기둥이 되시고,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하게 품어 주시는 품이 되어 주시지 못한 것이 나에게는 서럽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꽃 피울 수 있는 시기에 내 모든 청춘을 다 쏟아서 살아야 했을 때 곁에서 그냥 품이 되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힘들었을 때 등을 두드려 줄 아버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내 나이가 열 살도 채 되기 전부터 곁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도 그리웠고 사랑에 목이 말랐었습니다. 나는 그 포근한 품이 그리워 한으로 남았습니다. 내 곁에서 그 일을 맡아 준 것은 하느님, 신부님들 그리고 아내가 대신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많이 미웠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10년 동안 나는 거짓말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가득한 미움을 버리지 못하고 용서하였다는 허울을 쓰고 산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고 용서하는 것을 알게 된 나이에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이제 그 서러움에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며 용서하라.’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평생을 헛되게 산 것을 깨닫고 나서야 자신이 무척 미워지는 것입니다. 매일 가슴을 쥐어뜯는 자책이 나를 휘감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렇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지나온 삶을 본다면 악에 바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깊은 갈등과 아픔을 눈 녹듯이 전부 녹일 수 있는 방법을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먼저 용서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에서 새롭게 다가옵니다. 중풍병자의 딱한 실정을 먼저 아시고 용서해 주시며,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려보내시는 주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낍니다.

 

    그 동안 용서하며 사랑하지 못한 저의 삶을 용서해 주소서. 저희에게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시고, 사랑을 실천하는데 신실하게 하소서. ‘사랑하며 용서라며’ 살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의 주님!!


- 야고보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