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시

이해인 시 모음1

석란 2009. 3. 24. 14:39

 

              시인및 작품 소개

 

1945년 6월 7일 강원도 양구 출생
1970년 "소년" 지에 "하늘" "아침"
1976년 시집 <민들레의 영토>
1981년 제9회 새싹 문학상
1985년 제2회 여성동아 대상
1998년 제6회 부산 여성 문학상
2004년 <울림예술 대상> 한국가곡작시 부문수상
2007년 천상병시 문학상
학력    서강대학교대학원
경력    2000년 부산 가톨릭대 지산교정
          인성교양부 겸임교수
        1992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원
          문서 선교실 수녀겸 총비서

 

 

 

가을 저녁 / 이해인



박하 내음의 정결한
고독의 집 연기가 피네

당신 생각 하나에
안방을 비질하다

한 장의 홍엽(紅葉)으로
내가 물든 가을 저녁
낡고 정든 신도 벗고
떠나고 싶네

 
 
    행복 /이해인
 
매일은 나의 숲속
나는 이 숲속에서
때로는 상큼한 산딸기 같은
기쁨의 열매들을 따먹고
아픔과 슬픔도 따먹으면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운다  

 

 

   봉 숭 아 / 이해인
 
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찔레꽃 / 이해인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안개꽃 / 이해인
 
혼자서는
웃는 것도 부끄러운
한 점 안개꽃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서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가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 주는
기쁨의 별 무더기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마름은
숨길 줄도 아는
하얀 겸손이여

 

      나팔꽃 / 이해인


햇살에 눈뜨는 나팔꽃처럼
나의 생애는
당신을 향해 열린 아침입니다
 
신선한 뜨락에 피워 올린
한 송이 소망 끝에
내 안에서 종을 치는
하나의 큰 이름은
언제나 당신입니다
 
順命보다 원망을 드린
부끄러운 세월 앞에
해를 안고 익은 사랑

때가 되면
추억도 버리고 떠날
나는 한 송이 나팔꽃입니다

 

 

 봄이 되면 땅은/ 이 해인

깊숙히 숨겨 둔
온갖 보물
빨리 쏟아 놓고 싶어서
땅은 어쩔 줄 모른다

겨우내
잉태했던 씨앗들
어서 빨리 낳아 주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렵고 아픈
어머니 땅

봄이 되면 땅은
너무 바빠
마음놓고 앓지도 못한다
너무 기뻐
아픔을 잊어버린다

 

능소화 연가 / 이 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이제는 봄이구나 /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 이해인


또 한 해를 맞이하는 희망으로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시작될 것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안팎으로 힘든 일이 많아
웃기 힘든 날들이지만
내가 먼저 웃을 수 있도록
웃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우울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한 이들에게도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밝은 마음 지니도록 애쓰겠습니다

때때로 성격과 견해 차이로
쉽게 친해지지 않는 이들에게
사소한 오해로 사이가 서먹해진 벗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노력의 열매가 사랑이니까요
상대가 나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다가가서 해주는
겸손과 용기가 사랑임을 믿으니까요
차 한잔으로, 좋은 책으로, 대화로
내가 먼저 마음 문을 연다면
나를 피했던 이들조차 벗이 될 것입니다

습관적 불평의 말이 나올려 할 땐
의식적으로 고마운 일부터 챙겨보는
성실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소중한 밑거름이니까요
감사는 나를 살게 하는 힘
감사를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동안 감사를 소홀히 했습니다

해 아래 사는 이의 기쁨으로
다시 새해를 맞으며 새롭게 다짐합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그리하면 나의 삶은
평범하지만 진주처럼 영롱한
한 편의 시(詩)가 될 것입니다

 

민들레의 영토(領土) /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江)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은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름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사랑  /  이해인
1
그저 가만히
당신을 생각만 하는데도
내 조그만 심장이
쿵쾅거려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내 심장이 멎을까 보아
걸음을 더 빨리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2
진작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진작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해바라기 연가 / 이해인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어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 옷을 짜겠읍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어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기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우정일기 1 : 친구에게 / 이해인

    네가 좋아하는 푸른 하늘
    올려다보는 것이
    나의 기도였단다
    날마다 우체국에 가서
    너에게 편지를 부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단다
    기차를 타고 너를 보러 가는
    기다림의 세월 모여
    기쁨이 되었단다
    어제도 보고 싶었고
    오늘도 보고 싶고
    내일도 보고 싶을
    그리운 친구야.
 
    우정일기 3 / 이해인
    친구야
    네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네가 내 손을 잡아줄 때
    나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이
    다 녹아버리는 것 같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마침내 말해줄 때
    나는 바보처럼 할 말을 잃고
    하늘만 본다
    눈물만 글썽인다
    친구야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랑의 노래구나, 그렇지?
    희망의 등대구나, 그렇지?
 
    우정일기 2 : 벗에게 보내는 열두 마디의 고백/ 이해인
    1월엔 눈길을 걸으며
    새해의 복을 빌어줄게
    2월엔 촛불 밝히고
    너의 건강을 위해 기도할게
    3월엔 강변에 나가
    너의 고운 이름을 부를게
    4월엔 언덕에 올라
    네가 사는 집을 오래 바라볼게
    5월엔 숲으로 들어가
    사랑의 편지를 쓸게
    6월엔 흰 구름 바라보며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게
    7월엔 파도치는 바위섬에
    네 이름을 새겨둘게
    8월엔 바닷가에 누워서
    해를 바라보며 크게 웃어줄게
    9월엔 풀밭에 앉아
    네 얼굴을 그려볼게
    10월엔 단풍 고운 오솔길에서
    너를 향해 고맙다고 말할게
    11월엔 텅 빈 들녘에 나가
    사랑한다고 말할게
    12월엔 제일 예쁜 선물의 집에 들어가
    네가 선물임을 기억하며 선물을 살게.
 
    우정일기 4 / 이해인
    네가 내 곁에 있어
    좋다는 말
    아무리 감탄을 해도
    끝이 없네
    나를 위한
    너의 따듯한 마음씨에
    고맙다는 말
    아무리 많이 해도
    끝이 없네
    네가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마음
    아무리 숨기려 해도

    끝이 없네.

 
     나비에게 /이해인

 
너의 집은 어디니?
오늘은
어디에 앉고 싶니?
 
살아가는 게 너는 즐겁니?
죽는 게 두렵진 않니?
 
사랑과 이별, 인생과 자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늘
물어볼 게 많은데
언제 한번 대답해 주겠니?
 
너무 바삐 달려가지만 말고
지금은 잠시 나하고 놀자
갈 곳이 멀더라도
잠시 쉬어가렴


사랑하는 나비야

 

 

  가을길 / 이해인




바람이 지나가다
내 마음의 창문을
살짝 흔드는 가을길

탱자 시냇물 어머니
그리운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잠시 멈추어 선 가을길

푸른 하늘을 안으면
나의 사랑이 넓어지고
겸손한 땅을 밟으면
나의 꿈이 단단해져요

이제 내 마음에도
서늘한 길 하나 낼 거에요
쓸쓸한 사람들을 잘 돌보는
나무 한 그루 키우려고

 

  수선화 / 이해인



초록빛 스커트에
노오란 블라우스가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의
언니 같은 꽃

해가 뜨면
가슴에 종(鐘)을 달고
두 손 모으네

향기도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부르는 꽃

헤어지고 돌아서도
어느새
샘물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적시네 

    흙을 만지면 / 이해인


바다도 아름답지만 밭도 아름답다
바다는 멀리 있지만 밭은 가까이 있다
바다는 물의 시지만
밭은 흙의 시이다

비온 뒤 밭에 나가면 발이 폭폭 빠지도록
젖어 있는 흙냄새가 눈물나도록 정다웠다

흙은 늘 편안하고 따스했다

흙을 만지면
더없이 맑고 단순한
어린이의 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황홀한 고백 /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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