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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월 대보름의 어원과 유래, 풍습

석란 2007. 8. 28. 16:23

정월 대보름의 어원과 유래, 풍습
 

 

정월 대보름의 어원과 유래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을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 의 하나로, 삼원이란 상원(1월 15일), 중원(7월 15일), 하원(10월 15일)을 말한다. 도가에서 이 날은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정월
대보름(1월 15일)·7월 백중(7월 15일)·8월 한가위(8월 15 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명일(名日)은 보름을 모태로 한 세시풍속들이다.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 (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 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 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다.

정월 대보름의 유래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다. 태고적 풍속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정월(小 正月)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보름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 대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겠다.

 

정월 대보름풍속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정월을 `노달기`라 하여, 농군들은 휴식을 취하며 농사준비를 한다. 예컨대 가마니짜기·새끼꼬기·퇴비만들기·농기구의 제작 및 수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휴식으로만 일관되지는 않는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 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제의(祭儀)와 점세(占歲) 및 놀이가 행해진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농촌에서는, 마을공동제의로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하여 동제 (洞祭)를 지낸다. 가가호호 성의껏 제비를 갹출하여 제비(祭費)를 마련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 을 선출하여 풍요로운 생산과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것이 바로 동제인 것이다. 또한 풍요다산 을 기원하는 놀이로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줄당기기라고도 하며 주로 농촌에 전승 되어온 점세적 농경의례(農耕儀禮)이다.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숫줄을 만든 후에 마을단위 혹은 군단위로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게 되는데, 암줄이 승리를 해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축원해는 주는 것을 말하는데, 지역에 따 라서 마당밟기·매귀(埋鬼)·걸립(乞粒) 등으로 불리운다.
 
이와는 달리 개인적인 의례로서,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스럼 깬다`하여 밤·호두·땅 콩 등을 깨물며 일년 열 두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한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 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이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주는데,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
 
아이들은
대보름날이 되면 `액연(厄鳶) 띄운다`고 하여 연에다 `액(厄)` 혹은 `송액(送 厄)` 등을 써서 연을 날리다가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한다.

주부들은 단골무당을 청하여 가신(家神)과 여러 잡신들을 풀어 먹임으로써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이를 안택(安宅)이라고 한다.

대보름날 밤에는 달맞이 풍속이 있다. 달맞이는 초저녁에 높은 곳으로 올라서 달을 맞는 것을 말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아울러 달의 형체, 대소,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달집태우기
풍속대보름날 밤에 행해지는데, 횃불싸움 과 쥐불놀이 등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위에서 쌓아 놓 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피어 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을 맞이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볏가릿대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도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며, 복토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용알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을 기원하며,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다리밟기는 12다리를 밟으면 액을 면하고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곡식안내기는 경남지방의
풍속으로 농가에서는 정초에 자기 집 곡식을 팔거 나 빌려주지 않는다. 이는 이시기에 곡식을 내게 되면 자기 재산이 남에게 가게 된다는 속신 때문에 행해진 풍속이다.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아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종 자를 담아 지붕위에 올려 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종자들의 행방을 보아 남아 있으면 풍년이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나무그림자점은 한자 길이의 나무를 마당 가운데 세워 놓고 자정무렵 그 나무 비치는 그림자의 길이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달붙이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속에 집어 넣어 콩알이 붙는가 안붙는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닭울음점은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기다려서 그 닭울음의 횟수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대보름날에 행해지는 놀이로는 사자놀이, 관원놀음, 들놀음과 오광대 탈놀음, 석전, 고싸움, 쇠머리대기, 동채싸움 등이 있다.


 

정월 대보름의 시절 음식

대보름의 절식(節食)

햅찹쌀을 찌고, 또 밤·대추·꿀·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약반(藥飯)을 준비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 가 왕을 깨닫게 하여, 우리 풍속에 보름날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하는 날로 정하여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 제사를 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라 한 것으로 보아 약반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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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음식
 
정월대보름의 시절 음식
대보름날의 절식(節食)

햅찹쌀을 찌고, 또 밤·대추·꿀·기름·간장 등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박은 약반(藥飯)을 준비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정월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 가 왕을 깨닫게 하여, 우리 풍속에 보름날 까마귀를 위하여 제사하는 날로 정하여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 제사를 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라 한 것으로 보아 약반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의 풍속이다.
 
이 약반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잡곡밥·찰밥·농사밥 등을 그 대용으로 즐기기도 한다. 대보름날엔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해서 틈틈이 여러번 먹는다.

대보름의 절식으로 복쌈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높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보름에 귀밝이술이라는 풍속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 이것을 귀밝이술이라 한다. 생각컨대 섭정규(葉廷珪, 中國 宋代人)의 해록쇄 사(海錄碎事)에 춘분 전후의 무일(戊日)에 귀밝이술[治聾酒]을 마신다고 했으나 지금 풍속에는 이를 보름날에 행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상원절식(食)
한국에는 예로부터 정월열나흗날 저녁에 장수를 빌어 오곡밥이나 약식을 지어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耳明酒]을 마시며, 새벽에 부럼을 까서 이를 튼튼하게 하고 종기를 예방한다는 풍습이 전한다. 이들 절식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오곡밥[五穀飯] : 쌀 · 차조 · 차수수 · 팥 · 콩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는다. 오곡밥은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좋다고 하며, 또한 이 날에는 하루 9끼를 먹어야 좋다고 한다.
 
② 복쌈 : 취나물을 볶고 김을 구워 취나물과 김으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다. 쌈을 먹으면 부(富)를 쌈 싸듯이 모을 수 있다는 풍습에서 나온 것이다.
 
③ 귀밝이술 :
대보름날 아침에 가족이 모여 웃어른이 찬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마시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진다고 한다.
 
④ 진채식(陳菜食) : 진채란 묵은 나물을 뜻하는 것으로, 호박고지 · 박고지 · 말린가지 · 말린 버섯 · 고사리 · 고비 · 도라지 · 시래기 · 고구마순 등 적어도 9가지 나물을 볶아서 먹는다. 진채식을 먹으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⑤ 부럼 :
대보름날 아침에 눈 뜨는 즉시 호두·잣·밤·땅콩 등의 견과를 껍질째 깨물면서 "1년 12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뾰루지 하나 나지 맙시사" 하고 축원을 한다. 부럼은 부스럼에서 온 말이며, 부럼 깨무는 풍습을 고치지방(固齒之方:이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그외 백가반(百家飯)과 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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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
한국 전통의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 등을 섞어 5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전통적인 절식(節食)으로 지방에 따라 약간 다른 점도 있다.
 
오곡밥의 혼합비율에 대하여 《정조지(鼎俎志)》에는 좁쌀 · 기장 · 멥쌀 각각 2되, 수수쌀 5홉, 붉은팥 7홉, 검은콩 2홉을 섞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찹쌀 · 찰수수 · 흰팥 각 2되, 차조 1되, 좋은 물콩 5홉, 대추 1되의 비율로 섞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두 잡곡을 주재료로 한 밥이며, 위의 기록으로 보아 오곡밥에는 찹쌀과 멥쌀 어느 것이나 형편대로 썼고, 대추를 섞어 짓는 것도 의례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근래에는 반드시 앞에서와 같은 비율로 오곡밥을 짓지 않고 그 중 2∼3가지는 다른 재료로 하여 별식으로 지어 먹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의 절식은 약반(藥飯:약밥)이라고만 하여 오곡밥이 대보름날의 절식이라는 말은 없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본래는 약밥만을 대보름의 절식으로 하였으나 시대가 지나고 생활양식이 달라지면서 약밥보다는 풍습적인 오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만드는 법은, 먼저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팥은 삶아 건지며, 찰수수와 차조 ·찹쌀을 씻어 일어 놓는다. 찹쌀 · 팥 · 콩 · 찰수수를 고루 섞고 받아 놓은 팥물에 맹물을 보태어 보통 밥을 지을 때보다 물을 적게 잡아 소금을 물에 섞어 밥을 짓는다. 밥이 끓어 오르면 좁쌀을 얹고 불을 줄여서 뜸을 천천히 들인다. 뜸이 다 들었을 때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서 그릇에 푼다.
 
복쌈
음력 정월 보름(상원날)에 김이나 마른 취에 밥을 싸서 먹는
풍속.
취 · 호박고지 · 고비 · 고사리 · 도라지 · 가지 · 시래기 등을 가을에 말려두었다가 볶아서 먹고, 밥을 싸서 먹거나, 김을 구워서 쌌는데, 개성 등지에서는 들깻잎으로 싸서 먹기도 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복쌈 쌓듯이 돌을 노적처럼 마당에 쌓아놓고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상원날에는 이 밖에 명이 길다 해서 국수를 먹기도 하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말려놓은 나물을 삶아먹는 등의
풍속이 있다.
 
귀밝이 술
음력 정월 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술. 이명주(耳明酒) · 명이주(明耳酒) · 치롱주(治聾酒) · 총이주(聰耳酒)라고도 한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풍속으로, 정월 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술(청주) 한 잔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그해 1년 동안 즐거운 소식을 듣는다고 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마셨다.
 
부럼

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까먹는 잣 · 날밤 · 호두 · 은행 · 땅콩 따위의 총칭. 대개 자기 나이 수대로 깨문다. 여러 번 깨물지 말고 한 번에 깨무는 것이 좋다고 하여 한번 깨문 것은 껍질을 벗겨 먹거나 첫번째 것은 마당에 버리기도 한다. 깨물면서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한다. 이렇게 하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으며, 이가 단단해진다고 한다. 보름날의 부럼을 위해서 14일 밤에는 미리 과실을 준비해 두고, 땅속에 묻은 밤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놓는다.

 
백가반(百家飯)
대보름날 여러 집의 오곡밥을 먹어야 좋고 또는 백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남의 집을 다니며 일부러 걸식을 해서 많은 집의 밥을 먹는 일도 있다. 백가반을 먹지 않으면 어린 아이가 봄에 발병하고 몸이 마른다고 한다. 백가반을 얻어다가 절구에 올라타고 개와 마주 앉아 개에게 한수저 먹인 다음 자기도 한 수저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전한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의하면 봄을 타서 살빛이 검고 야위는 아이들은 상원에 백 집의 밥을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와 마주 앉아 개에게 한 숟갈 먹이고 자기도 한 숟갈 먹으면 그런 병이 도지지 않는다고 했다.

 
약식
상원날은 약식을 먹어야 좋다고 한다. 그 유래는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의 고사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소지왕이 즉위한지 10년 되던 해에 하루는 천천정(天泉亭)에 행신(行辛)했는데 쥐와 까마귀가 와서 울다가 쥐가 사람의 말로 말하기를, 까마귀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라고 했다. 왕은 기사로 하여금 까마귀를 따르게 했으나 남촌에 이르렀을 때 두 돼지가 싸우고 있는 것을 보다가 까마귀를 잃었다. 기사는 까마귀를 찾아 헤매다가 못에서 나온 노인을 만나 봉서(奉書)를 받아본 즉 `개견이인사 부개견일인사`(開見二人死 不開見一人死)라 적혀 있었다.


기사는 이글을 왕에게 올리니 왕이 개봉치 않으려는 것을 일관(日官)이 일인(一人)은 왕이요, 이인(二人)은 서민이라 하므로 이 말을 듣고 개봉한즉 `금갑(琴匣)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왕은 궁중에 돌아온 즉시 금갑을 활로 쏘니, 내전(內殿) 분수승(焚修僧)과 궁주(宮主)가 몰래 내통하여 왕을 죽이고자 모의하고 있다가 맞아 죽었다.

이후로 상원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부르고, 까마귀를 약식으로 제사 지내는 민속이 생겨 오늘날까지 전해온 것이라고 한다. 약식은 14일 밤이나 15일에 만드는데, 찹쌀. 대추.밤.꿀.잣을 섞어 쪄서 만든다. 이것은 검붉은 빛이 나고 단맛이 잇으며 오래 두고 먹어도 좋다. 우리의 사신 일행이 북경에 머물고 있을 때 상원날이면 약식을 꼭 만들어 먹었다. 중국의 귀인들이 약식의 맛을 보고 반색하여 기뻐했으며 `백미(百味)를 다한 것`이라 칭찬했다고 하는데, 약식의 맛은 중국에 까지 알려진 셈이다.
 
 
이 약반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잡곡밥·찰밥·농사밥 등을 그 대용으로 즐기기도 한다.
대보름날엔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해서 틈틈이 여러번 먹는다.

대보름의 절식으로 복쌈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높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온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보름에 귀밝이술이라는 풍속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 이것을 귀밝이술이라 한다. 생각컨대 섭정규(葉廷珪, 中國 宋代人)의 해록쇄 사(海錄碎事)에 춘분 전후의 무일(戊日)에 귀밝이술[治聾酒]을 마신다고 했으나 지금 풍속에는 이를 보름날에 행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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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의 민속 - 매서(賣暑), 정월 대보름의 민속
 
더위를 파는 것 - 매서(賣暑)

상원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상대방이 대답하면 곧 `내 더위 사가라`한다. 이것을 `매서`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더위를 팔면 1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미리 눈치채고 대답하지 않는 수가 있으니 학(謔(희롱할 학))이라고 했다.

이름을 불렀을 때 상대편이 더위 판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내 더위 사가게`하면 도리어 이쪽에서 더위를 먹게 된다. 더위를 한 번 팔면 되는 것을 장난꾼은 여러 사람에게 몇 번이고 파는 수도 있다.
 
상원날과 더위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가축들도 더위를 막는다고 해서 예방으로 소나 돼지의 목에 왼새끼를 걸어주거나, 혹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꺽어 둥글게 해서 목에 걸어준다. 왼새끼를 목에 걸어 주는 것은 좌색(左索)으로 귀중(鬼衆)을 묶었다는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며,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는 악귀를 쫓는 민속적 주술로 쓰이는 일이 많아 더위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더위를 먹지 않아야 하절(夏節)에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幸福)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매서(賣暑)하는
풍속(風俗)이 생긴 것으로 믿어진다. 더위팔기는 성인보다 아이들 사이에 성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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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의 민속
 
달맞이(迎月)

대보름날 저녁 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를 때 사람들은 달맞이를 위하여 뒷 동산에 올라간다. 횃불에 불을 붙여 가지고 될수 있는대로 먼저 달을 보기 위해서 산길을 때라 뒷동산에 오르는 것이다. 대보름달이 솟을 때에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제각기 기원을 한다. 농부는 풍년들기, 도령은 과거에 급제, 총각은 장가들기를, 처녀는 시집가기를 기원한다. 대보름달은 될 수 있는대로 남보다 먼저 보는 것이 길한 것이니 서로 앞을 다투어 산에 올라간다.

대보름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희면 우량이 많고 붉으면 한발이 있으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이 남으로 치우치면 해변에 풍년이 들 징조이고, 북으로 치우치면 산촌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쥐불놀이

14일과 상원 밤에 농가에서는 들에 나가서 논,밭둑을 불태우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고 한다.  쥐불놀이를 위해서 미리 횃불을 만들어 두었다가 달이 오를 무렵에 떼지어 들로 나아가 쥐불놀이를 하므로 여기저기에서 불타는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쥐불놀이는 잡귀를 쫓고 신성하게 봄을 맞이한다는 것과, 잡초를 태움으로써 해충의 알을 죽여 풍작을 기도하며, 봄에 새싹이 날 때 거름이 되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쥐불놀이를 하면 무병하고 액을 멀리할 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대보름날 저녁에 청소년들 사이에 횃불싸움을 한다.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청소년들은 횃불싸움을 위한 홰를 만든다. 낡은 마당비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대나무 또는 싸리로 홰를 필요한 수만큼 만들어 두었다가 보름날 저녁에 뒷산에 올라간다. 그러면 건너 마을에서도 횃불싸움 준비를 갖추고 청소년들이 모여들어 서로 대치한다.

둥근 달이 동녘에 막 솟아오르면 대치하고 있던 패들은 서로 놀려주고 약을 올려 때로는 욕설까지 퍼붓는다. 이때 농악대들은 제각기 자기 편의 기세를 올리기 위해서 신나게 한바탕 농악을 울려 흥을 돋운다. 흥분이 고조되었을 때 그 가운데 용감한 청년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채 손에 횃불을 들고 앞장을 서 싸움을 시작한다. 이 때에 소년은 소년끼리, 청년은 청년끼리 싸우게 된다. 횃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횃불을 휘두르며 싸우는데 서로 함성을 지르면서 때리고 차고 심지어는 옷까지 태운다. 이것은 매우 용맹스러워 보인다. 승부는 부상을 당하거나 횃불을 빼앗겨 항복한 사람이 많거나 또는 후퇴한 편이 패하게 된다. 횃불싸움은 협동정신을 기르고 남성적인 용감성을 나타내는 놀이로 고대 전투의 연습이기도 했다. 

기타 민속

보름 전날(14일) 농가에서는 그 해의 오곡(五穀)이 풍성하여 거두어들인 노적(露積)이 높이 쌓이라는 뜻에서 `볏가릿대-화우(禾竿)`를 세우며, 이 날 밤에는 성명설상(星命說上) 액년(厄年)에 당하는 사람은 양법(穰法)으로 제웅을 만들어 그 속에 약간의 돈과 함께 액년에 당하는 이의 성명, 생년월일시를 적어 넣어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

또 보름날 밤에는 다리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다리밟기`를 하고 동네 안의 악기(惡氣)를 진압하여 연중 무사하기를 비는 뜻으로 `사자놀음`, `지신(地神)밟기`, `들놀음(野遊)`, `매귀(埋鬼)놀음` 등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祈豊) 놀이로서 `줄다리기`, `횃불싸움` 등을 하며, 어촌에서는 그 해의 풍어(豊漁)를 비는 뜻에서 `풍어놀이`를 한다.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글쓴이 : 수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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