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모음

사바타 도요 시집 / < 약해지지마>

석란 2011. 7. 29. 21:27

인물사진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발간한 사바타 도요.
.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살아갈 힘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비밀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어머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나에게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잊는다는 것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너에게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아침은 올 거야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거야

저금

나 말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마음속에 저금해 두고 있어

외롭다고 느낄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해봐

연금보다 나을테니까

하나님

따돌림에 괴로워하며

자살하는

어린이들이 있네

하나님

어째서

살아갈 용기를

주지 않아셨나요

전쟁을 획책한

따돌리는 사람들을

당신의 힘으로

무릎 꿇게 주세요

가족

며느리와 아들이

다툰

하늘은 금세 흐려지네

어미니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며느리가

말을 걸어준

다음

햇살이 나를

감싸주네

인연이 있어

만들어진 작은 가족

언제까지고

맑은 하늘아래서

살고 싶어라

목욕탕에서

목욕탕에

설날 아침 해가 비춰와

창가의 물방울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62 아들이

썩은 나무같은 몸을

씻어주네

도우미보다

능숙하지 않지만

나는 지긋이

눈을 감네

새해를 시작하는 관례로…..”

뒤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오네

그건 예전에 내가

너에게 불러 줬던 노래

추억 1

아이가

생긴

알렸을때

당신은

정말이야? 잘댔다

나는 이제부터

열심히

일할거야

그렇게 대답해 주었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벚나무 가로수 아래를 지나

집으로 왔던 그날

내가 제일

행복했던

추억 2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어느 집에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너에게1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서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행복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내가
빛나고 있습니다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하늘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1


무언가
힘에 겨운 일이 생기면
엄마를 떠올리렴

다른 이와
맞서 싸우면 안 돼
훗날 자신이 미워진단다

자, 보렴
창가에
환한 햇살이 들기 시작해
새가 노래하고 있어

힘을 내, 힘을 내
새가 노래하고 있어
아들아, 들리니


아들에게 2


엄마가
혹시라도 노망들까
걱정하지 마.

오늘은 일요일이지?
너는 겐이치

상냥하고 성급한
내 하나뿐인 아들
아직까지는 기억한단다

자, 가봐 어서
넌 네 할 일을 하렴

답장


바람이 귓가에서
"이제는 슬슬
저 세상으로 갑시다"
간지러운 목소리로
유혹을 해요
그래서 나
바로 대답했죠
"조금만 더 여기 있을 게
아직 못한 일이
남아 있거든."
바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스윽 돌아갑니다.

외로워지면


외로워질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
그 온기는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힘낼게요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양 갈래 머리를 한 내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
끝없이 넓은 유채꽃밭
92세인 지금
눈을 감고 보는
한때의 세계가 정말 즐겁구나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수정을 하지

96세의 나

시바타씨
무슨 생각하세요?
도우미가
물었을 때
난처했습니다.
"지금세상은
잘못되었어
바로 잡아야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바람과 햇살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과 햇살이
몸은 어때?
마당이라도 걸으면 어때?
살며시 말을 걸어옵니다.

힘을 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영차'하며 일어섭니다.




'좋은 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 정한모  (0) 2012.01.02
아침 우기/임응수  (0) 2011.05.08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천상병  (0) 200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