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 첫 시집 <약해지지마>를 발간한 사바타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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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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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힘
나이 아흔을 넘기며 맞는
하루하루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들
제각각 모두
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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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그만 고집부리고
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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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나,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이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 하지 않아
아흔 여덟에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많아
구름도 타보고 싶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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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아들이 초등학생 때
너희 엄마
참 예쁘시다
친구가 말했다고
기쁜 듯
얘기했던 적이 있어
그 후로 정성껏
아흔일곱 지금도
화장을 하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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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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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뚝뚝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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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다는 것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잊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람 이름
여러 단어
수많은 추억
그걸 외롭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왜일까
잊어 가는 것의 행복
잊어 가는 것에 대한
포기
매미 소리가
들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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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나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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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올 거야
혼자 살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 되었어
참 많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
그리고 순수하게 기대는 것도
용기라는 걸 깨달았어
“난 불행해.......”
한숨을 쉬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틀림없이 아침 해가
비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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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
나 말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마음속에 저금해 두고 있어
외롭다고 느낄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해봐
연금보다 나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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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따돌림에 괴로워하며
자살하는
어린이들이 있네
하나님
어째서
살아갈 용기를
주지 않아셨나요
전쟁을 획책한
이 따돌리는 사람들을
당신의 힘으로
무릎 꿇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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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며느리와 아들이
다툰 날
하늘은 금세 흐려지네
어미니 걱정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며느리가
말을 걸어준
다음 날
햇살이 나를
감싸주네
인연이 있어
만들어진 작은 가족
언제까지고
맑은 하늘아래서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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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목욕탕에
설날 아침 해가 비춰와
창가의 물방울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62세 아들이
썩은 나무같은 몸을
씻어주네
도우미보다
능숙하지 않지만
나는 지긋이
눈을 감네
“새해를 시작하는 관례로…..”
등 뒤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오네
그건 예전에 내가
너에게 불러 줬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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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
아이가
생긴 걸
알렸을때
당신은
“정말이야? 잘댔다
나는 이제부터
열심히
일할거야”
그렇게 대답해 주었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벚나무 가로수 아래를 지나
집으로 왔던 그날
내가 제일
행복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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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2
아이와 손을 잡고 당신의 귀가를 기다렸던 역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죠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물푸레나무의 달콤한 향기 어느 집에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래
그 역의 그 골목길은 지금도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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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1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어 있으면 안돼 나도 96년 동안 못했던 일이 산더미야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들 교육 수많은 배움
하지만 노력은 했어 있는 힘껏 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자 일어서서 뭔가를 붙잡는 거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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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이번 주는 간호사가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의 감기가 나아 둘이서 카레를 먹었습니다
며느리가 치과에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의 연속인가요
손거울 속의 내가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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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무심코 한 말이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이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말을 고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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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외로워지면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족 같은 구름 지도 같은 구름 술래잡기에 한창인 구름도 있다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
너도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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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 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 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 지 열여덟 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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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1
무언가 힘에 겨운 일이 생기면 엄마를 떠올리렴
다른 이와 맞서 싸우면 안 돼 훗날 자신이 미워진단다
자, 보렴 창가에 환한 햇살이 들기 시작해 새가 노래하고 있어
힘을 내, 힘을 내 새가 노래하고 있어 아들아,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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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2
엄마가 혹시라도 노망들까 걱정하지 마.
오늘은 일요일이지? 너는 겐이치
상냥하고 성급한 내 하나뿐인 아들 아직까지는 기억한단다
자, 가봐 어서 넌 네 할 일을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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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바람이 귓가에서 "이제는 슬슬 저 세상으로 갑시다" 간지러운 목소리로 유혹을 해요 그래서 나 바로 대답했죠 "조금만 더 여기 있을 게 아직 못한 일이 남아 있거든." 바람은 곤란한 표정으로 스윽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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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지면
외로워질 때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손으로 떠서 몇 번이고 얼굴에 대보는 거야 그 온기는 어머니의 온기 어머니 힘낼게요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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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양 갈래 머리를 한 내가 활기차게 뛰어다니고 있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 끝없이 넓은 유채꽃밭 92세인 지금 눈을 감고 보는 한때의 세계가 정말 즐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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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히는지 나중에 깨달을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서둘러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찾아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지우개와 연필로 수정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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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의 나
시바타씨 무슨 생각하세요? 도우미가 물었을 때 난처했습니다. "지금세상은 잘못되었어 바로 잡아야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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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살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과 햇살이 몸은 어때? 마당이라도 걸으면 어때? 살며시 말을 걸어옵니다.
힘을 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영차'하며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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