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춘추

[스크랩] <강의록에서>제2강 이 강좌의 주안점

석란 2012. 2. 1. 21:30

이현복 수필교실

제2강 이 강좌의 주안점

새로 시작하자는 뜻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만남입니다. 만남은 정과 대화의 나눔입니다. 나눔은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는 불안이 없고, 갈등이 없고,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희망입니다. ‘내가 왜 존재하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시도 때도 없이 삶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는 것이 옹색하고 치사하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불안하다.....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존재의 이유를 알고, 시원하게, 자유롭고 평화스런 삶이 그립다. 아름다움과 기쁨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이것이 인간의 원초적 바람입니다.

이 원초적 바람을 이루는 길이 무얼까? 많은 사람들이 추구해왔습니다. 대답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잡히지 않는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자신 밖에서 찾은 것입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여 알고 가꾸는 길입니다.

그 길은 거머쥐는 길, 쌓아올리는 삶인 갈등과 대립, 불안과 초조가 아니라, 내려놓는 삶인 공존과 평화, 기쁨과 자유의 삶을 가꿈입니다.

그런 삶의 가꿈은

1.자기표출의 작업으로 스스로 고독을 달래고, 화를 식힘으로 카타르시스다.

2.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항변으로 사회에 언제나 현역임을 자임한다.

3.부모님에 대한 정,잊지 못하는 은사님과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푼다.

4.친구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두뇌의 녹슬기를 예방하며, 자기구현을 통해 저절로 이루는 보람도 있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같이 놀래’의 손내밈이며 손잡음이다.

나이테를 생각하면서 반성 겸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통과의례로서의 의미를 지닌 내 작품집 한두 권은 낸다는 꿈도 또한 멋진 꿈이 아니가 합니다. 내 가까운 이웃들의 평소 후의에 감사하는 뜻을 담아서.....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세상에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고 염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김 기 남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누구의 가슴 앞에서라도

바람 같은 웃음을 띄울 수 있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헤어짐을 주는 사람보다는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늘 들꽃 같은 향기로 다가오는

그런 편안한 이름이 되고 싶다.

제일 먼저 봄소식을 편지로 띄워주고

제일 먼저 첫 눈이 내린다고

문득 전화해서 반가운 사람

은은한 침묵의 사랑으로 서성이며

나도 몰래 내 마음을 가져가는 사람

아무리 멀어도

갑자기 보고 싶었다며 달려오는 사람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이름이고 싶다.

‘나’와 ‘너’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와 같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내려놓으며 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지니고 삽니다.

인생관, 사회관, 자연관이 뚜렷하여 인생을, 살림살이를, 대자연을 읽어보고 음미합니다. 이는 단 한번의 인생을 보람 있게 살기 위한 휴식이요, 모색입니다. 일요일이면 바이블을 안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삽니다. 사랑을 실천합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꿈, 희망, 이상, 야망, 인생, 웃음, 사랑을 벗하고 삽니다. 생동하는 기백,

진취적인 비젼의 발상,

넘치는 박애정신,

이런 것들을 보이지 않는 정신이,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은

1)자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2)태도를 향상시킵니다.

3)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4)내 인생에 감사합니다.

5)더 편안히 여유 있는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 매력 있는 사람은 인간성이 그 토대입니다.

인간성, 그것은 ‘나’의 본질과 ‘너’의 본질이 하나가 되는 ‘만남’입니다. 그런 인간성을 가진 사람은 친구가 많고, 사랑과 존경이 따르고, 지도자가 되어 자아실현의 길을 갑니다.

수필문학은 바로 그 인간성, 인간미를 주제로 다루는 테마의 아름다움 문학입니다. 오늘 이 시각부터 ‘나’와 ‘너’와의 만남을 통하여 나와 내 세계의 변화할 수 있도록..... 홀로라는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예, 재산, 사랑 그리고 자랑과 아픔 등 나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네가 있어 행복한 나 말입니다.

1.문학 장르 중 가장 아름다운 장르가 수필문학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구제의 길입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자기와 만남입니다. 아름다움은 거짓이 없는 겁니다.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체와 척, 허풍과 과장, 허위와 위선 등등을 모두 떨쳐 버리고 본래의 나와의 만남입니다.

왜냐면, 수필은 자기가 자기에게 읽히는 자아 고백의 문학, 자조(自照)의 문학, 자기성찰의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한 인간을 충실하게 살아 자애심(自愛心)과 자존심(自尊心)을 키워 내대로 떳떳하게 사는 겁니다.

걸림 없는 마음으로 내가 살아온 지혜를, 살아가는 지혜를, 지혜롭게 살고픈 나를 찾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점검이라고나 할까 합니다.

2.수필을 통한 문학의 생활화, 생활의 문학화로 가치 있는 체험의 내면화입니다.

문학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을 형상화한 언어 예술입니다. 야기서 말하는 ‘가치 있는 체험’에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현실의 기록이 아닌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이 빚은 형상적 언어이며, 수필문학이 보여주는 개인의 삶과 사회적 실상은 ‘상상으로 빚어진 진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학의 언어는 같은 인문학이면서도 철학보다, 역사보다 더 구체적인 것입니다.

철학이 가장 추상적이고, 역사는 다소 구체적이며, 문학은 가장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면 “고부 갈등은 인간관계의 부정적 양상 중의 하나다.” 철학적 진술이며,

“조선시대의 대가족제도 속에서는 호된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 느리가 많았다.” 역사적 사회적 진술이고,

“범이 그리 세다하나

시아비보다 더 세겠나.

고추장이 맵다하나

시어미보다 더 맵겠나. ” 이 노래는 우리나리 민요 ‘시집살이의 한 대목으로 문학적 구체적 형상화입니다.

문학은 특히 수필은 자기 삶의 체험을 통해 구체적 언어로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색의 뜰에 서서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나이는 마음의 질로 결정되는 것.

당신이 을 잃은 사람이면,

희망이 식는다면,

더 이상 앞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야망의 불꽃이 꺼져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늙은 이.

그러나

당신이 인생을 최대한 향유하고 있다면,

삶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아무리 해가 많이 지나갔어도,

아무리 많은 생일이 지나갔어도,

당신은 늙지 않았다.

(H. S Fritsch)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이 항 녕 (李恒寧)

좋은 옷을 입지 못했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몇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좋은 옷이나 나쁜 옷이나 별로 구별이 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몇 시간만 지나면 맛있는 음식이나 맛없는 음식이나 다 같이 소화되기는 마찬가지다. 훌륭한 집에 살지 못한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좀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훌륭한 집이나 그렇지 못한 집이 다 성냥갑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사물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외곬으로 나가기가 쉽다. 당장 눈앞에 일어난 사물에 대해서 덮어놓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고, 좀더 공간적 여유를 가지고 사태를 관망할 줄 모른다. 오늘의 현실 그것은 하나지만, 이것을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그 평가는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시간적으로 보아 오늘을 기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일년 후를 기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십 년 후나 백 년 후를 기점으로 하여 생각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서는 천 년이나 만년과 같이 장기적인 장래를 기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더욱 나아가서는 영원이란 관점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

또 공간적 관찰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사태를 바로 눈앞에 지척에 놓고 그것을 보는 방법도 있고, 십리라는 거리를 떼어놓고 보는 방법도 있고, 때로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리나 만리라는 장거리에서 내려다보는 방법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바라다보는 방법도 있고, 나아가서 우주선을 타고 달세계에 가서 쳐다보는 방법도 있으며, 더욱 나아가서는 더 멀리 태양계를 벗어난 무궁한 대우주의 극(極)에서 훑어보는 방법마저 상상할 수 있다.

안목이 낮은 사람일수록 어느 사태에 직면하면 당황하게 되고, 안목이 높은 사람일수록 어떤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다. 당장에 보면 슬픈 일이라도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보면 그것이 기쁜 일이 될 수 있으며, 당장에 보면 추잡한 것같이 보이는 것이라도 좀더 공간적 여유를 두고 보면 미려(美麗)하게 보이는 수가 있다.

우리는 얼굴이 못났다고 비관할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 같은 추남도 진리를 사랑하는 그의 곧은 마음으로 그는 전 인류의 마음의 애인이 되었다. 우리는 가난하다고 비관할 것은 없다. 예수는 집도 없었고, 옷도 남루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아무런 재물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사랑의 실천으로 그는 전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벼슬이 낮다고 비관할 것은 없다. 공자는 미관 말직에 머물렀으며, 좀더 일할 수 있는 자리를 구해서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은 실패했지만, 그의 높은 뜻으로 왕이나 천자(天子)까지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자손이 적고 친척이 적은 것을 비관할 것은 없다. 석가는 육친의 처자까지도 버렸으나, 그의 자비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를 어버이처럼 사모하는 사람들이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가?

괴테는 실연의 쓰라림을 당하면 그것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시켜 슬픔을 무한한 희열로 전환시켰다. 우리나리의 김삿갓은 평생을 불우한 방랑으로 지냈지만, 그것을 시(詩)로 승화시켜 평생을 너그럽게 살았다. 이 모두는 좀더 높은 곳에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한없이 부러운 사람들이다.

출처 : 수필춘추
글쓴이 : 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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