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춘추

[스크랩] <강의록 중에서>제10강 문학의 숲속을 거닐며-낙서/피천득

석란 2012. 2. 1. 21:33

이현복 수필교실

          제10강 문학이 있는 삶은 아름답다.

문학작품은 어떤 글인가?--동심과 자유로움의 개성적인 삶의 형상화

 

<생각을 열며 1>..........................................................................................

 

낙서(落書)의 뜻

나뭇잎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것을 '낙엽'(落葉), 추수 후에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은 '낙수'(落穗)라고 하듯이, 아무 데나 함부로 씀이나 그런 글씨, 그림는 '낙서'(落書)라고 하여 '落'자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런 예는 '타락'(墮落: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이 있고, 그런가 하면, '낙필'(落筆)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씀."이라고 '낙서'와는 달리 '落'자가 긍정적인 뜻으로 쓰임이고 '낙성'(落成: 건축물이 완공됨)도 긍정적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런 낙서가

20세기에 이르러 무의식의 발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나아가 그것을 예술형식과 인간본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해석하려는 욕구가 늘어나면서 낙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생각을 열며 2>..........................................................................................

 

음을 위 젊음를 위한 낙서

 

피천득

내 생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

넘어지면 혼자서 일어나는 것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얻어맞아도 울지 않는 것

부모의 유산을 기다리지 않는 것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

모교를 위해 혼자서도 응원가를 부를 수 있는 것

이른 아침 도서관 앞의 긴 대열에 때때로 서 있는 것

친구를 위해 즐겁게 헌혈 하는 것

진정한 용기와 관용을 구별 할 줄 아는 것

자기보다 약자에게 큰소리치지 않는 것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싱싱한 매력을 풍기는 것

오늘의 고생을 밑거름 삼아 인생의 지표로 만들 수 있는 것

친구의 호주머니보다는 그의 마음을 좋아 하는 것

몇 번 다운 되도 ko패 되지 않는 것

좌절이라는 낱말을 자신의 일기장에 쓰지 않는 것

혼자서도 산꼭대기를 올라가는 것

맞선마다 딱지를 맞아도 내게도 짝이 있을 거라는 여유를 갖는 것

촌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출생지를 도시라고 속이지 않는 것

외국어는 몰라도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겨울만 되면 감기를 앓는 체질이 아닌 것

자기의 수입이 적더라도 떳떳이 말하는 것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기억나는 것

한번 싸웠다면 분명한 승부가 날때까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도 전투를 지속 시키는 것

짜장면을 먹으면서 비싼 요리 시켜 먹는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

 

                             낙 서

                                                                                                                     피 천 득

주제꼴이 초췌하여 가끔 푸대접을 받는 일이 있다. 호텔 문지기 한테 모욕을 당한 일까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나는 소학교 시절에 여름이면 파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그런데 새로 빨아 다린 것을 입은 날이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두루마기가 구겨지고 풀이 죽기 시작하면 나의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중학교 시절에는 고꾸라 교복 한 벌, 그리고 여름 후시모리 한 벌을 가지고2년 동안 입었다.

겨울 교복 바지는 절어서 윤이 나고, 호떡을 먹다 떨어뜨린 꿀이 무릅에 배여서 비오시는 날이면 거기가 끈적끈적하였다. 저고리 후끄는 언제나 열려 있었다.

교복을 사서 처음부터 채우지 않고 입던 터이라 목이 자린 뒤에는 선생님이 아무리 야단을 치셔도 잠글래야 잠글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교복을 입고 아무데를 가도 몸과 마음이 편하였다. 내가 상해로 유학을 갈 때에도 이런 교복을 입고 갔었다. 돈이 있다고 해도 호텔에서 들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사지 양복을 맞춰 입고 헌 교복은 알랑뚱시(넝마장수)에게 동전 열두닢을 받고 팔아 버렸다.

그 사지 양복은 입은 지 몇 달 후에야 내 옷 같아져서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

근년 미국 가는 길에 동경에 들러 한 치누를 만났더니 그는 나를 보고 미국 가거든 옷 좀 낫게 입고 다니라고 간곡히 충고를 하였다. 그래 보스톤에 도착하자 나는 좋은 양복을 사 입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러 백화점을 돌아다녀 보아도 좋은 감으로 만든 기성복으로는 내게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맞춰 입을까 했더니 공전이 놀랄 만큼 비쌌다. 그후 외이샤스 소매 기장을 줄이느라고 옷값 이상의 공전을 지불한 적이 있다. 나는 하는 수없이 싸구려 한 벌을 사 입었다. 저고리 소매가 길어서 좀 거북하였다.그러나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또 내 옷을 바라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여자들은 여자들 끼리만 서로 옷을 바라다보는 모양이었다. 귀국한 지 삼 년, 공전값 싼 한국에서도 소매를 못 줄이고 그 양복을 그대로 입고 다닌다. 다행히 우리 나라 여성도 내 옷을 바라다보는 이가 하나도 없다.

가슴을 펴고 배를 내 밀고 걸어 보라고 일러주는 친구가 있다. 옷차림도 변변치 않은 데다가 작은 키를 구부리고 다니는 것이 보기에 딱한 모양이다. 그래 나는 어떤 교장선생님같이 작은 키를 자빠질 듯이 뒤로 젖히고 팔을 자으며 걸어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몹시 힘드는 일이었다. 잘난 것도 없는 나이니 그저 구부리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빨리 하여 위엄이 없다고 일러주는 친구가 있다. 그래 나는 명성이 높은 어떤 분이 회석에서 마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만 끔벅끔벅 하던 것을 기억하고 그 흉내를 내보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것은 더 큰 고통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여 그 노릇은 다시 안 하기로 하였다.

어린 아이 같이 웃기를 잘하여 점잖지 않다는 것은 또한 친구의 말이었다. 그래 나는 어느 일요일 아침, 성난 얼굴을 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서영이가 슬픈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문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네게 있어서 이보다 큰 일은 없다. 나는 얼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잘 생기지도 못한 얼굴이 사나와 보인다. 나는 찡끗 웃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정신의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날 하루 종일 서영이 하고 구슬치기를 하였다.

요즘 나는 점잔을 빼는 학계의 ‘권위’니 사회적 ‘거물’을 보면,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의 어렸을 적 모습을 상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그의 허위의 탈은 눈같이 스러지고 생글생글 웃는 장난꾸러기로 다시 환원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

성격 : 경수필,회고적.체험적 수필

   문체 : 간결체, 우유체

   주제 : 동심과 자유로움의 개성적인 삶

   구성 : 대화체 구성(생동감과 현장감)

출전 : <금아 시문선>(1959)

<낙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선생님의 체취가 몸으로 배어든다.

‘거꾸로 살기’의 여유가 그 마음의 평안이 멋지다.

‘거꾸로 살기’

새것만을 찾아다니고 유행 따라 헤매는 요즘의 세태에서 때에 절어 낡은 옷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그 여유의 달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울 수 있는 평온한 심경의 관조. 이런 점에서 수필을 관조와 달관의 문학이라고 하는가 보다.

선생님의 옷차림새, 자세, 말투, 걸음걸음에 이르기까지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참 친구, 따뜻한 이웃의 참견과 충고다.

그것들을 마다 않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신통치 않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 심성에는 따스한 인간미다. 그래 수필의 주제가 작가의 인간미라고 하는가 보다.

이 작품을 읽어 가면 글 흐름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본래적인 나, 남에게 보여진 나에서 변신해본 나, 그 중에서 본래의 나에서 모든 것이 편하고 자유로움을 찾은 선생님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서영이에게서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지 모르는 현대에서 말이다. 이 작품은 낙서처럼 쓴 글이다. 수필은 형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유형식이란 하는가 보다.

요즘 점잔을 빼는 학계의 ‘권위’, 사회적 ‘거물’들의 그 허위의 탈을 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선지식인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불쌍한 어른들 속에서 언제나 어린이 같은 동심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참된 삶은 마음의 고요, 안락을 얻은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저마다 굳게 자기 성의 성주로 사는 지금, 그 빗장을 여는 열쇠로 삼아 선생님의 삶처럼 동심과 자유로움을 되찾아 제 멋지녀 개성 있는 나로 사는 계기가 되었으면 어떨까 한다. 그래서 수필을 인간학이라 하는가 보다.

출처 : 수필춘추
글쓴이 : 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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