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춘추

[스크랩]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내 영혼의 정원 가꾸기다.

석란 2012. 2. 1. 20:12
 

     문학 작품을 읽자 <내 영혼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따뜻함과 지성미와 감성미를 지닌 아름다운 나로 가꿔 아름답고 멋진 나를 위하여-

  인간이 살면서 지향하는 목표는 행복의 추구 입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려거든 사람이 되라.”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으로서 사람이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련을 넘어 수행이 있어야 함과 행복을 구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내포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자신의 일생이란 영화필름 제작하여야 합니다. 그 영화의 제작자도 자기요, 감독도 자기요, 주인공도 자기요, 시청자도 자기입니다. 따라서 먼 훗날 그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지우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영화제작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지금부터 내 인생이란 영화를 제작하려 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우리의 삶은  인생이란 한편의 영화필름을 제작하는 과정입니다. 누구나 그가 살아온 만큼 영화를 제작하였고 또 과정에 이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인간 졸업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살아온 만큼의 영화를 제작하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장면을 제작 중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다른 생물들과 달리 제작할 수 있는 능력가 소재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핏덩이요, 시간이요, 관계요, 감정이며 자존심이며 이름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온전히 지키려는 지난한 몸짓이 삶의 과정입니다. 이 삶의 현장인 사회는 고해(苦海)입니다. 따라서 인생고라는 불안을 안고 삽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초적인 두려움 7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난과 남의 비판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고 사랑과 자유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며,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인생이 있습니다. 인생이 있기에 인생고가 있습니다.

인(人)+생(生)+고(苦)는 즉 사람은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괴로운 것입니다. (生의 어원은 흙에다 풀을 심으면 자란다는 뜻입니다.)

이 불안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이 있고, 도덕, 윤리, 종교가 있습니다. 이것은 감성의 억제요 이성의 키움입니다. 


그러면 불안과 괴로움의 인생고를 겪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0 머리가 무겁습니다.- 일어나는데 1년, 빈 머리, 생각하는 갈대.

0시간의 한계를 인식합니다.- 욕망과 허무를 인식하는 존재 

0각기 다른 얼굴을 지닌다.- 위대한 존재이며, 관계적 존재.

0고고한 소리를 지르면서 태어난다.-감정을 가진 존재.

0나가 누구인가를 인식한다,-가치와 자존의 존재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요, 철학입니다. 각자의 삶을 겉으로 보면 침묵이요, 닫혀진 세계 같지만 조금만 열고 살짝 보면 기나긴 사연들이 있고, 끝없는 아픔이 있고, 가슴 저린 쓰라림이 있가 하면 그때 그 공간에서의 기쁨들, 잊혀지지 않는 고마움의 실감들, 말 못하고 간직해야 했던 밀어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원히 가슴 속에 묻어둔,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진실을 알면 인생을 아는 것이요, 절실을 알면 생활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절실인가를 담고 있는 것이 문학작품입니다. 그래서 문학을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하고, 문학작품을 세속의 경전이라고 합니다.

이 세속의 경전인 문학작품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절실인가를 찾기 위해 작품을 읽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1.체험의 확충입니다.      

이에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삶을 소모하지 않고, 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세상살이 삶의 간접체험입니다. 슬기로운 삶을 위하여 온갖 것을 체험하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더구나 연습도 복습도 재방송도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산다 해도 우리가 직접경험할 수 있는 양은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들으면서 그것을 자기 체험으로 대신하는 슬기가 필요합니다. 이 간접체험의 보고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부족한 경험을 보충하여 체험을 확장하는 것이 작품 읽기입니다. 

2. 내면의 화장입니다. 

  이러한 삶 속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너져 내리는 외면의 변화를 그 누가 막아줄 것이며, 나이로 변모되는 외모의 변화를 무엇으로 보강하여 늙지 않는 나다움을 지니고 살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화장하는 것이 자신의 외모를 변화시키는 노력이라면 독서는 외면에 드러나지 않는 정신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화장입니다. 화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독서하면서 따뜻한 지성미와 감성미를 바탕으로 한 세련된 모습을 지닌다는 것, 아름답고 멋지지 않습니다. 독서하면서 아름답고 멋진 나로 가꾸는 화장이 작품읽기입니다.

3.내 영혼 정원의 풍요로운 가꿈입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독자의 영혼은 풍요로운 정원이 됩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일이 아니라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고귀한 영감, 창조적인 정신을 담은 것이 문학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문학작품을 읽으면 정서가 함양되고, 상상력이 키워지며, 사고의 폭이 넓어집니다. 문학의 본질은 정서와 상상과 사고와 표현입니다. 느끼며, 상상하며,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현대인은 인문성의 상실로 심성이 메마르고,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어 비인간화니, 군중 속에 고독이니 하며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종교 서적과 문학작품 읽기입니다.

4.자기 영혼의 초대입니다. 

책의 내용은 독자의 경험입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나간 경험과의 만남입니다. 그 경험과 만남을 자기 영혼에의 초대라고도 하고, 잠자는 감정을 일깨워 영혼에 충격을 주면서 잃었던 자기를 발견하라고도 합니다.

메마르고 마비된 듯한 자기감정이라도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며, 때로는 시들은 사랑의 불씨에 불을 붙이기도 하는 것, 모두가 잠자는 감정의 일깨움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현실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를 만나 나를 찾는 것이 또한 작품 읽기입니다.

끝으로 문학작품 읽기는 실리적, 세속적 욕망을 성취하는 데는 실익을 위한 읽기가 아닙니다. 다만 문학작품은 풍부한 서정과 함께 진,선,미,성이란 인간이 지향하는  최고 가치를 담고 있어 짐승스런 본능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다움의 영적 상태로 거듭나게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예술로, 철학으로 가꾸려면 문학작품을 읽읍시다. 문학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눈물의 의미를 알고, 만나고 헤어짐의 인연을 알아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나로 가꾸는 과정입니다. 

“행복하려거든

   사람이 되라.”는 말이 새롭습니다.

이제 자의식이란 자그마한 손거울 들고 내가 만든 한편의 영화 속의 필름을 지우며 비워가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 정도로 끝내고 실질적으로 내 영혼에 비타민 된 작품의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사람은 많아도 / 사람 같은 사람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서  /사람 냄새나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박인희의 <사람에게> 중에서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김현승의<창>중에서

“그러나 동시대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고, 괴롭히지 않았다. 불안하게 굴지도 않고, 부담도 주지 않고, 또 지루하게 굴지 않았다.” 

                     헬무드 홀트하우스의 (어느 위대한 사람의 사후명성> 중에서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 왈드 에마슨의 <무엇이 성공인가> 중에서

“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몇몇 사람을 끔직히 사랑하며 젊잖게 늙어가고 싶다.” 

                                         피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

출처 : 수필춘추
글쓴이 : 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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