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춘추

[스크랩] <새해 첫 강의록>에서- 문학에 대한 재인식을 위하여

석란 2012. 2. 1. 21:17
삶과 문학

--2006년 첫 강에 붙여--

1.문학은 우리 영혼에 새 에너지 공급원
오늘의 산업사회 환경에서 풍화(風化)되어 가고 있는 인간의 이념과 사상에 새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이념(理念)은 이성으로부터 얻은 최고의 개념이며 온 경험을 통제하는 주체(主體)이고, 사상은 판단과 추리(推理)를 거처서 생긴 의식 내용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의식이 있다면 우리 현실의 사회 병리현상은 만연될 수 있겠습니까. 현실이란 언제나 시간의 지평 속에서 수행됩니다. 따라서 참다운 현실이란 과거와의 필연성과 미래와의 가능성을 연결하는 자유로운 매체로서 의식될 때 참다운 현실은 인식됩니다.
오늘의 현실을 봅시다.
과거와의 필연적 연계도 없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기 때문에 현실주의라는 것이 오늘의 의식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찰나(刹那)-지극히 짧은 시간-주의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 비인간적인 추함을 그리거나, 혹은 현실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현실을 초월하고, 개량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그리려고 합니다.
올바른 의식을 지녀 사람다운 삶을 삽시다.
사람다운 삶이 뭡니까.
산업사회의 물결 속에서 배금주의 실용주의 소유주의에서 과정이 아닌 결과 중시의 사회 풍조 속에서 나 우선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다운 삶의 근본은 대우주의 중심자가 ‘나’라는 자존심 아닌, 자긍심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나’로 해서 이 우주는 존재하는 겁니다. 부정과 부패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금력, 권력, 명예, 지위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존심....제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품위 를 스스로 높이는 마음.
*자긍심....제 스스로 하는 자랑하는 마음
내 마음에 티끌 없는 맑고 순수한 소박한 마음, 물들지 않고 꾸미지 아니한 마음을 지님입니다. 마음이 소박한 사람은 마음에 빛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그 맑고 꾸밈없는 흰빛으로 자기의 주변과 세계를 비춥니다.
일찍이 장주(莊周)는 허실생백(虛室生白)이라 했습니다. 마음의 티끌을 씻어내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이 날 것입니다. 수행이란 말도, 수도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문학은 무엇이며, 문인은 누구입니까.
독일의 낭만파시인이며 소설가인 아이핸돌프(J.V Eichendorff,1788-1857)란 사람은 “시인(문인)은 세계의 하아트(심장.마음)”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아트는 머리나 팔 다리처럼 실용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아트가 상실할 때 인간의 다른 모든 부분은 쓸데가 없게 됩니다. 즉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영혼적인 요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살지 말고 가슴인 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식으로 나를 가꾸어 갑시다.
이것이 문학에서의 내용 즉 의식이며 사상으로 내 영혼입니다.

2. 문학은 삶의 나침반
우리 인생은 자기에게 주어진 짐을 싣고 가는 긴 항해라 봅시다. 배는 우리의 육체요 짐은 물질문명이요, 닿을 항구는 삶의 목표입니다. 항해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침반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나침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나침반은 정신입니다. 정신은 물질보다 우에 있습니다. 마치 육체에서 정신이 빠지면 이는 곧바로 시체이듯이 정신에 기반하지 잃은 문명과 과학은 절름발이 삶을 사는 겁니다. 마찬 가지로 정신이 없는 문화는 오래 동안 유지될 수 없습니다.
가정이란 사회도, 기업도, 국가사회도 물질만을 추구하고 재산을 늘리고, 물질적 풍요를 목표로 했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는 삶의 나침반인 정신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최첨단 과학 기술이나 발달된 의술만 가지고 즉 물질적 풍요와 장수로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 해법을 찾아 고뇌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날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삶의 질을 바꾸는 일,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는 일은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산업사회를 살아가며, 이 사회에 물들여져, 익숙해진 대다수 사람들은 “문학의 위기가 왔다.”고 걱정과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문학은 새로운 존재로 부상해야 합니다.
문학은 가시적인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비가시적인 정신의 세계입니다. 비가시적인 정신의 세계인, 사랑, 봉사, 헌신,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의 세계는 무의미 허탈 그 자체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항해를 위해 필수품인 나침반을 준비합시다. 나침반이 없는 항해는 많은 장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3. 문학은 잃어버린 삶의 항로를 찾는 지혜의 보고(寶庫)
오늘의 세상에는 최첨단 과학 장비를 비롯하여 정보사회에서 편리의 이기인 컴퓨터, T.V, 오디오 등등을 동원하여 그것이 행복을 창조하듯이 우리를 우롱하고 있습니다. 이 편리와 현대화라는 이데오르기가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항로를 만들었습니다.
잃어버린 항로를 찾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삶의 지혜를 과학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보다 깊고 넓은 지혜의 보고는 ‘문학’입니다.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의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이 밥이 되고, 돈이 되고, 지위가 되고, 명예가 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문학 그렇습니다. 문학은 아름다움을 찾고, 눈물의 의미를 일고, 만나고 헤어짐의 인연들을 알아 보다 많이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판단하게 합니다. 깊이 잇고 푹 넓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문학하는 사람과 안문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루어 봅시다.
‘아름다운 삶’은 문학을 비롯하여 예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서는 보이지 않는 행복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은 ‘추하지 않은 삶’입니다. 언행에서 성실과 진실이 빠지면 추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통해 추하지는 맙시다. 문학 작품 속에는 ‘아름다운 삶’과 ‘추한 삶’이 공존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4.삶과 문학은 둘이 아니라 하나
삶의 지혜의 원천은 그 첫째가 자연이요, 그 둘째가 인간이요, 그 셋째가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문학작품이 나침반이 없는 항해자에게 나침반이 되어 안내의 역할을 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문학이 하는 역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가시적인 물질의 세계요, 문학은 비가시적인 정신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세계는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해 줍니다. 인물을 통하여는 갈등과 화해를 배우고 주제를 통하여서는 삶의 의미를 파악하게 합니다.
그래서 문학은 삶의 영토를 넓혀줍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고, 갈등이 있어 번뇌가 있습니다. 문학은 바로 이런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통하여 지혜를 넓혀갑시다.
이제 다시 문학에 대한 내 의식을 재정립합시다.





사색의 뜰에 서서

--생각이 인격이요 그대 자신이다--

누구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 생각을 생각만으로 머물기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며 산다.
그러므로, 생각하며 사는 삶이 사람다운 인격적인 삶이다. 그러나 생각이 운명을 결정짓는 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적대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소극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식자층에 많음을 보고 놀랄 때에는, 이에 놀란 자들 또한 예외가 아님을 발견하면서 자괴하는 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인간의 뇌에 관한 설명을 인용하면서 생각해 본다.

“뇌에는 100~120억 개의 뉴런 즉 신경세포가 있어 1초에 1억 개의 감각을 기록한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서 기별을 받아 마음을 통제하는 본부인 뇌에 전달한다. 즉 과거 12시간 동안 우리 뇌는 4조 3,200억 개의 감각으로 무차별 폭격을 받은 셈이다. 우리 몸을 넘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약 10억 개의 신경세포가 참여한다고 한다. 창조적 생각을 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신경 세포를 동원할지 생각해 보면 경이롭다.”( 손윤호 <時兆 '04.8> p.4)

정말이지 생각을 잘 하고, 말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인격이 된다. 몸을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야말로 인격임을 깨닫게 된다. 이를 삶이요 흔히 운명이라고도 한다.

그대의 생각을 잘 지켜라. 그것들은 말이 된다.
그대의 말을 잘 지켜라. 그것들은 행동이 된다.
그대의 행동을 잘 지켜라. 그것들은 습관이 된다.
그대의 습관을 잘 지켜라. 그것들은 성품이 된다.
그대의 성품을 잘 지켜라. 그것들은 그대의 운명이 된다.
-푸랭크 아웃로

그러므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으며 나의 주인공은 나요 곧 운명으로 귀결됨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다짐하는 적극적인 인생관을 집합시킨 다음과 같은 다짐을 정리하여, 생각의 자산으로 저장하고 활용함도 묵시록 이상의 잠언인가 한다.
인생관에 관한 생각들을 다짐하는 연습해 보자.


적극적인 인생관

인생은 도전이다-그것과 맞서라. .
인생은 선물이다-그것을 받아들이다.
인생은 모험이다-그것을 감행하라.
인생은 슬픔이다-그것을 극복하라.
인생은 비극이다-그것을 직면하라.
인생은 의무이다-그것을 행하라.
인생은 게임이다-그것을 즐겨라.
인생은 수수께끼이다-그것을 풀어라.
인생은 노래이다- 그것을 노래하라.
인생은 기회이다- 그것을 잡아라.
인생은 여행이다- 그것을 끝마치라.
인생은 약속이다-그것을 이행하라.
인생은 아름다움이다-그것을 찬양하라.
인생은 투쟁이다- 그것과 싸워라.
인생은 목표이다-그것을 성취하라.
인생은 퍼즐이다-그것을 풀어라.
인생은 영원할 수 있다-그것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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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인생관이외에도 많은 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영양분 있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이 건전한 안목이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에 영양이 많은 생각을 주입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위와 같은 희망에 찬 말을 연습하면서, 실천해 보고 또 해 보면, 힘도 솟고 살맛이 나는
신선한 삶의 양식이 아닐까 합니다.



출처 : 수필춘추
글쓴이 : 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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